가격 인상·해외여행 증가·소비 위축 '3중고'...한풀 꺾인 백화점 명품 매출

명품 브랜드 ‘오픈런’(매장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바로 구매하는 행위) 현상이 최근 주춤하고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 ⓒ연합뉴스
명품 브랜드 ‘오픈런’(매장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바로 구매하는 행위) 현상이 최근 주춤하고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 ⓒ연합뉴스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  “요즘에는 대기줄 없이 바로 입장도 가능합니다.”

근 2년간 유행처럼 번졌던 명품 브랜드 ‘오픈런’(매장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바로 구매하는 행위) 현상이 눈에 띄게 주춤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신세계·롯데·현대백화점 등 평일과 주말 가릴 것 없이 새벽부터 오픈런 줄로 빼곡했던 백화점 명품관은 평일의 경우 대기인원이 거의 사라져 오전 시간대 바로 입장할 수 있을 정도다. 지난해까지 몇 시간씩 줄을 서도 제품이 다 팔려 구할 수 없었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양새다.

오픈런이 시들해진 현상은 둔화된 백화점 명품관 매출 성장률로도 확인할 수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지갑을 닫는 소비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막혔던 해외여행 빗장이 풀리면서 백화점에서 명품을 소비하는 대신 직접 구입이 가능한 해외여행이 늘어난 것과 명품 브랜드의 지나친 가격 상승이 명품 오픈런 행진을 가로막은 이유로 꼽히고 있다.

MZ세대 명품 소비 주춤 여파

명품 리셀 가격도 덩달아 하락

명품 소비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통계로도 나타나고 있다. 국가통계포털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국내 백화점에 입점한 해외 유명 브랜드의 전년 동월 대비 매출 증가율은 8.1%였다.

해외 유명 브랜드 매출 증가율이 한 자릿수대를 기록한 것은 2020년 12월(9.1%) 이후 약 2년 만이다. 해당 수치가 2021년의 경우 2월 45.7%, 3월 89%까지 치솟았던 데 비하면 확실히 국내 명품 시장 성장률이 꺾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백화점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롯데·신세계·현대 등 백화점 3사는 경기 불황 속에서도 연간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명품관 신장률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지난해 4분기 신세계백화점 명품 매출 신장률은 9%를 기록해 2021년 4분기 41%에 비해 30%이상 감소했다. 롯데백화점도 비슷한 하락세를 보였다. 지난해 4분기 롯데백화점 명품 해외패션 매출 신장률은 7.8%로 전년 동기(25.5%) 대비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그동안 백화점 매출을 견인했던 명품 성장세가 한풀 꺾이고 있는 것이다.

한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금리 인상이 가계에 반영되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명품 매장 방문객 수가 확실히 줄고 있다”라며 “이에 백화점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돼 올해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할 시점”이라고 전했다.

명품 시장의 성장 둔화세는 전반적인 경기 위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고물가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개인의 소비생활도 긴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레 명품 소비도 줄고 있다.

명품 소비 시장의 붐을 이끌었던 MZ세대(1980년∼2000년대 출생)의 경우 주식과 코인 시장이 침체되면서 명품 소비 바람이 잦아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몇 년 새 주식과 가상화폐 등으로 돈을 번 젊은 세대들이 명품 소비에 집중했던 흐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명품 리셀 가격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리셀 플랫폼 크림에 따르면 지난해 초 1400만원대에 팔렸던 ‘샤넬 클래식 미디움 플랩백’ 리셀가는 200만원 이상 하락한 1200만원대다. 매장에서 정품을 구입해 웃돈을 얹어 파는 명품 리셀 시장도 거품이 꺼지고 있는 것이다.

명품 브랜드들 가격 인상에 반발

비싼 한국 매장 대신 해외서 구매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가격을 올리는 데 대한 피로감도 명품 시장 성장 둔화세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샤넬은 지난해 11월 주요 제품 가격을 최대 13% 인상했다. 앞서 샤넬은 지난해에만 4차례나 가격을 올린 바 있다. 올 초에는 에르메스, 불가리, 롤렉스 등도 일제히 가격을 인상했다.

소비자들은 '호갱'(호구+고객)을 거부했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명품 구입처가 다양해지자 비싼 한국 매장이 아닌 해외에서 명품을 구입하는 흐름이 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김명주 연구원은 “해외 여행이 본격화되면서 명품 매출은 6.0%의 낮은 증가율을 기록했다”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명품 시장의 성장 둔화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글로벌 명품 브랜드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시장이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한국인의 지난해 명품 소비 지출액은 168억달러(약 21조원)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보다 24% 증가한 규모다. 1인당 명품 소비 금액도 325달러(약 42만원)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미국은 280달러(약 36만원), 중국 55달러(약 7만원) 수준이다.

한 명품업계 관계자는 “백화점 명품 소비 등이 주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는 한국의 시장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라며 “올해도 명품 브랜드들은 K팝 스타와의 컬래버레이션 등을 통해 한국 시장 소비자들을 잡기 위해 주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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