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조선인민군 땅크(탱크)병대연합부대간 대항훈련경기를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4일 보도했다. 북한은 이날 신형 탱크를 공개하며 대남 전쟁의지를 다졌다. 사진 제공=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조선인민군 땅크(탱크)병대연합부대간 대항훈련경기를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4일 보도했다. 북한은 이날 신형 탱크를 공개하며 대남 전쟁의지를 다졌다. 사진 제공=연합뉴스

작년 말부터 시작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남 도발 발언의 진의를 두고 국내외적으로 많은 분석과 평가가 있다. 김 위원장 발언의 핵심인 ‘통일의 포기’와 ‘남한 평정’이 핵무기를 사용하는 전쟁을 해서라도 남한을 무력 통일하겠다는 의도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것은 남북통일이 무망해졌음을 자인하는 김 위원장의 자탄(自歎)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분단 이후 남북한 모두에게 민족의 염원이었다.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은 이를 구실로 전쟁까지 일으켜 조국의 강토를 피로 물들였다.

우리 헌법의 3조 영토 조항은 ‘한반도와 부속도서를 영토로 삼는다’고 돼 있다. 북한 헌법에는 별도의 영토 조항은 없이 9조에 ‘북반부에서 북한 정권을 강화하고, 사상·기술·문화 3대 혁명을 달성해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루어,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의 통일을 실현한다’고 돼 있다.

얼핏 한반도의 북반부만 북한의 영토라는 뜻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사상혁명을 통해 자주 평화통일을 달성한다는 것은 ‘미국에 예속된 남조선을 해방시킨다’는 이른바 ‘적화통일’ 이론의 근간이다. 남북분단 이후 숱한 도발로 북한이 일관되게 추구해 온 대남 전략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은 형세의 유·불리에 따라 1960년 8·15경축대회에서 ‘남북연방제’를 통일방안으로 제시한 데 이어 1973년에는 ‘고려연방제’, 1980년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1991년에는 ‘일국양제 연방제’, 2000년 김대중 정부 때의 ‘낮은 단계 연방제’까지 노동당대회 신년사 등 온갖 계기에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북한의 ‘연방제’ 통일전략은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에 힘입어 남한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북한을 앞서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부터 사실상 통일 포기 전략으로 변질됐고, 1980년대 소련 붕괴와 동서독 통일 이후로는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막기에 급급했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 체제에서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의미하는 강성대국 건설에 매진했다. 김정일 사후 김정은 체제에 와서는 핵무기의 완성을 선언하고 헌법에 체제 보위를 위해 핵무기를 쓸 수 있다는 조항까지 집어넣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그러던 중에 나온 것이 지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회의에서 “대한민국을 제1적대국이자, 주적으로 간주하도록 교육사업을 강화하고, 공화국 역사에서 통일·화해·동족개념을 완전히 제거하라”는 발언이다.

이에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30일 노동당 전원회의 5차 회의에서 남한의 역대 정부는 보수 진보를 떠나 모두 흡수통일만 노렸다고 주장하며, 이제부터 남북 관계는 통일지향 동족 관계가 아니라 적대적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했다. 또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할 계획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핵무기까지 동원해 남한을 공격하겠다며 통일·화해·동족을 들먹이는 것 자체가 논리의 모순이다. 그런 논리의 모순을 인정해 통일·화해·동족을 버리겠다는 마당에 김 위원장의 발언 수위가 최고의 호전성을 띄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 때문에 그의 대남부문 발언이 우리의 주목의 대상이 됐을 뿐, 나머지 민생에 관한 발언들은 실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하나마나한 것이었다. 그 중 경제 부문에서 ‘기간공업부에 자립성을 키우고 현대화를 실현함’이 대표적인 것이었다. 특히 사회 부문에서 ‘인민소비품의 증산 및 질 제고, 특히 학생 교복과 가방, 신발의 질을 결정적으로 높임’을 목표로 제시한 것은 북한의 소비재 부족과 품질의 열악성을 드러냈다.

이처럼 민생 부문에서 내세울 게 없는 상황이라, 대남부문 발언 수위가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의 진의는 전쟁 분위기를 조성,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점에서 김 위원장의 통일 포기와 핵전쟁 협박은 남북통일이 무망해진 것에 대한 자탄과 쓰지도 못할 무기를 만들어 놓고 겪는 고통에 대한 자탄이 겹친 것이다.

김정일 시대부터 북한은 핵무기만 완성하면 강대국이 돼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된다고 선전해 왔고, 김 위원장은 그 완성을 선언했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은 그 반대다. 주민들에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그가 갖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일 것이다.

내부의 불만이 커질 때 북한이 써온 상투적인 수법은 대남 도발이다. 그러나 그것도 만만치 않다. 남한이 압도적인 화력으로 강력한 반격 태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섣부른 도발은 전면전의 위험성을 안고 있음을 그도 모를 리가 없다.

북한의 핵전쟁 협박은 재래식 무기로는 남한의 보복을 감당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쓴다 해도 상당수는 한미일의 킬체인의 작동으로 발사 전에 북한 땅에서 파괴될 수 있다. 체제를 옹호하기 위해 개발한 핵무기로 체제도 망하고, 북한 땅도 폐허가 된다.

사면초가에 빠진 김 위원장의 기를 살려준 것은 작년 7월 이후 행해진 북한-러시아 간의 무기 밀거래다. 북한이 러시아에 건넨 무기 양이 컨테이너 6700개로 포탄 수백만발 분량에 이른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발표이다.

이것은 미·소 냉전시절 강대국이었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잘못 도발해 세계 최빈국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구걸하기에 이른 비참한 전락(轉落)의 스토리는 될지언정, 김 위원장의 전쟁 도발 야욕을 북돋우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북한은 이를 계기로 러시아로부터 경제지원 외에 핵보유국 지위를 보장받는 계기로 이용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 미국 측에서 나오고 있으나,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그런 조치에 러시아가 응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지구상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기를 바라는 나라는 없다고 봐야 한다. 중국과 소련이 6·25전쟁에 가담한 것도 당시 북한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남한의 배 이상 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일성이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의 모택동을 향해 전쟁을 애걸복걸한 탓이 가장 컸다.

경제력 규모에서 40배 정도 큰 남한을 상대로 북한이 전쟁을 도발한다는 것은 승산이 성립되지 않는 도발이다. 지금도 북한을 도운다면 러시아와 중국밖에 없는데, 두 나라 모두 각각 우크라이나와 대만이라는 발등의 불이 있다. 어디에다 비춰도 김 위원장의 대남 인식은 망상이다. 핵무기로는 통일도, 번영도 이룰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인식해 탄식을 멈추고, 대화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통일의 의지를 새로이 가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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