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의 판세가 계속 출렁이고 있다. 당초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 예상되던 선거였다.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를 당했던 국민의힘은 그 뒤로도 별다른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민심 회복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위기에 직면한 국민의힘은 부랴부랴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등판시켜 한동안 ‘한동훈 효과’를 누렸다. 여기에 마침 민주당이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 내홍에 갇혔다. 그런 분위기를 타고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앞서는 골든 크로스가 발생했다. 거꾸로 민주당의 위기가 거론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경기도 평택 소재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거행된 제9회 서해수호의날 기념식을 마치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피격된 천안함 선체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경기도 평택 소재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거행된 제9회 서해수호의날 기념식을 마치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피격된 천안함 선체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용산발 악재들로 '정권심판론' 부활

그러나 그것도 잠시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식칼 테러’ 발언, 이종섭 주호주 대사 귀국 문제로 ‘윤-한 2차 갈등’이 빚어졌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분출된 수도권 위기론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한발 물러서며 한 위원장의 요구를 수용했지만 이미 국민의힘은 상승세가 꺾이고 하락세로 전환된 이후였다. 정권심판론은 이렇게 부활했다.

여기에다 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섰던 의대 정원 확대 문제가 의료계의 반발 속에 장기화되면서 국민들의 우려와 피로가 심해진 상황도 여권에게는 큰 부담이 되는 상황이다.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의 양보를 받아내면서 중재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지만, ‘증원 계획 철회’라는 의료계의 완강한 입장 앞에서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선거 판세는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한 시점에서 야권의 우세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수도권의 주요 경합 지역들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민주당 후보에게 오차 범위 밖의 열세를 보이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이어진다. 이대로 간다면 ‘야권 200석’까지도 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국민의힘 안팎에서 고조되고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28일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지지자와 함께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28일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지지자와 함께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국혁신당 상승세로 야권 파이 확대, 민주당 지역구 선거에 도움

예상하지 못했던 조국혁신당의 돌풍도 국민의힘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조국혁신당에 대한 여론의 반전은 이번 총선에서 이례적인 장면으로 꼽힐만한 사건이다. 사실 ‘조국 사태’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비판 여론이 훨씬 우세했고, 그를 감쌌던 민주당은 ‘내로남불’의 낙인이 찍혀 결국 정권을 내주게 됐다.

조 전 장관의 출마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지난 2월까지도 확인된 바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CBS노컷뉴스 의뢰로 지난 2월 15~16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 전 장관의 출마에 대해 ‘적절하지 않다’ 63.1%, ‘적절하다’ 29.9%, ‘모름’ 7.0% 순으로 나타났다. ‘적절하다’는 의견은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60.8%를 나타냈고,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7.5%에 불과했다. 정치 성향을 ‘중도’라고 답한 층에서는 ‘적절하지 않다’ 65.0%, ‘적절하다’ 29.8%로 전체 의견과 비슷한 추이였다. 당시만 해도 중도층을 중심으로 조 전 장관의 출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했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랬던 조국혁신당의 약진을 낳고 있는 배경으로는 ‘반윤 비명’(반윤석열-비이재명) 층의 결집을 들 수 있다. 윤석열 정부에 반대하지만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도 반대하는 층이 조국혁신당으로 모인 결과다. 조국혁신당은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고 비례대표 선거에만 나서는 당이지만, 비례투표 여론조사에서 3자 구도를 형성하는 기염을 토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제까지 여론의 추이를 놓고 보면 조국혁신당이 거대 양당과 겨루는 한 축이 된 상황은 가히 대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입시비리 혐의 등으로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만 간신히 모면한 조국 대표가 신당 바람의 기폭제가 될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조국혁신당의 상승세가 단지 야권 내부에서의 제로섬 게임의 단계를 넘어 야권 전체의 파이를 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조국혁신당 출범 초기만 해도 기존 민주당 지지층의 이탈을 흡수하는 정도로 야권 내부의 제로섬 게임을 하는 것으로 판단됐다.

그러나 점차 조국혁신당의 지지율은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한 폭을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민주당+조국혁신당’ 지지율의 합이 50%에 육박하며 국민의힘에 비해 10~15% 가량 높은 여론조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조국혁신당의 등장 이후 야권 전체의 파이가 커졌다고 판단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조국혁신당 지지에는 이전의 민주당 지지층뿐만 아니라 중도층 일부까지 합류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민주당 지지층 일각으로부터도 ‘내로남불’이라고 비판을 받았던 조 대표가 만든 신당이 비민주당 중도층의 지지까지 얻는 상황은 특기할 만하다.

실제로 한국갤럽이 지난 3월 19~21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3월 3주차 여론조사 결과, 현재 지지하는 정당은 국민의힘 34%, 민주당 33%, 조국혁신당 8%로 각각 나타났다. 그런데 비례대표 정당 투표 때 어느 정당을 선택할 것 같은지 물었더니 국민의미래 30%, 더불어민주연합 23%, 조국혁신당 22%로 나타났다.

주목되는 것은 중도 성향 층의 일부가 조국혁신당에 투표할 의사를 밝힌 점이다. 중도 성향층의 투표 의향 비례대표 정당은 국민의미래 21%, 더불어민주연합 22%, 조국혁신당 24%로 세 당이 엇비슷하게 나타났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 의뢰로 지난 3월 18~22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25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3월 3주차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조국혁신당에 대한 중도층의 지지 의사가 더 높게 나타났다. 22대 총선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 조국혁신당을 뽑겠다는 응답이 27.7%를 기록했다. 더불어민주연합 지지율은 20.1%, 국민의미래 지지율은 29.8%였다. 조국혁신당 지지율(27.7%)과 더불어민주연합 지지율(20.1%)을 합하면 47.8%로 국민의미래 지지율보다 18%포인트 높았다.

이 조사에서 조국혁신당은 중도층에서도 33.1%의 지지율을 얻었다. 중도층의 더불어민주연합 지지율은 19.3%, 국민의미래 지지율은 26.3%였음을 감안하면 중도층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조국혁신당이 보인 것이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 참조).

조국혁신당의 약진은 민주당에도 큰 도움을 주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양당이 경쟁하는 관계다. 그러나 이 대표의 민주당이 싫어서 투표 의사가 없던 층이 비례투표에서 조국혁신당을 찍으려고 투표장으로 가면서 지역구 투표에서는 민주당을 찍는 흐름을 낳을 가능성이 커졌다. 비례대표 선거만 한정해서 보면 민주당은 조국혁신당 때문에 몇 개의 의석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역구 선거에서는 그 손실을 만회해 훨씬 많은 의석을 얻을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조국혁신당이 민주당 지지층을 넘어 중도층 일부의 지지까지 흡수하는 현상은 이전까지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내로남불’의 상징처럼 여겨져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정권을 내놓게 되는데 영향을 줬던 조 대표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 같은 반전이 이뤄진 것은 무엇보다 윤 대통령에 대한 반대 의사가 그만큼 많고 강해졌다는 얘기다. 정권 심판을 위해 조 대표의 ‘입시비리 재판’ 같은 것은 후순위의 고려사항이 되는 분위기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7일 인천 남동구 모래내시장에서 손범규 남동갑 후보, 신재경 남동을 후보와 함께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7일 인천 남동구 모래내시장에서 손범규 남동갑 후보, 신재경 남동을 후보와 함께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수도권-영남권' 인식 차이…중도확장 노선 불분명

사실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대해 골든 크로스를 이뤄낸 것은 ‘한동훈 효과’가 빛을 발휘할 때였다. 이전까지의 ‘윤석열 대 이재명’ 구도를 ‘한동훈 대 이재명’ 구도로 전환시킨 것은 국민의힘으로서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미 지난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정권심판 선거로 끝나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싸늘한 민심이 확인된 바 있다. 그 뒤로도 윤 대통령은 민생 챙기기에 적극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떠나간 민심을 되돌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설수록 국민의힘이 선거를 치르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넘어서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다시 ‘황상무 사퇴, 이종섭 귀국’ 문제를 둘러싸고 한 위원장과 갈등을 빚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의대 정원 확대라는 의제를 갖고 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선 일련의 상황은 국민의힘에는 부담이었다. 윤 대통령이 전면에 보이고 한동훈의 존재감이 약해질수록 국민의힘의 수도권 선거가 어려워지는 상황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의힘이 총선의 승부를 좌우할 중도층의 표심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조국혁신당이 잠식하는 상황을 낳은 책임이 윤 대통령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도층의 표심을 얻을 수 있는 확실한 변화의 시도는 한동훈 비대위 아래에서도 많이 부족했다.

지역구 공천에서 불공정 논란은 없는 편이었지만, 청년-여성 후보들의 비율이 너무 적고 현역 의원 우선의 공천이 되면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감동 없는 공천'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는 국민의힘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 당의 전반적인 체질 개선이 이뤄지지 못한 채 한동훈의 개인플레이에만 의존하다보니 중도층의 마음을 이끌어 오기에는 한계가 뚜렷했다.

얼마 전에 국민의힘에서 벌어진 ‘범죄자·종북세력’ 문구 현수막 해프닝은 국민의힘이 안고 있는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 광경이었다. 지난달 25일 밤 국민의힘에서는 윤재옥 공동선거대책위원장 명의의 ‘긴급 지시’가 전국 각 지역구 후보의 선거사무소에 내려졌다. 내용은 ‘더 이상 이 나라를 범죄자들과 종북세력에 내주지 맙시다’라는 문구의 정당 현수막을 게첩하라는 것이었다. 국민의힘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에도 같은 내용의 정당 현수막 게첩 지시가 내려왔다.

그러나 수도권 출마자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지시에 대한 격한 반발과 항의가 쏟아졌다. “여당이 정책 선거를 해야 하는데 종북 이념 타령을 하나”라는 불만과 우려들이 선대위에 제기됐다. 이제까지 민생 문제 해결 의지를 담아 ‘국민의힘은 일하고 싶습니다’, ‘국민의힘이 육아부담 격차해소 합니다’ 같은 문구의 현수막을 준비했는데 느닷없이 ‘종북세력’ 문제를 전면에 내거는 국민의힘의 모습은 후보 자신들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결국 국민의힘은 긴급 지시 하루 만에 이 지시를 철회했다. 한 위원장이 이 사안을 뒤늦게 보고받고 즉각 철회를 지시한 것이다. 장동혁 사무총장이 기자들 앞에 나서서 배경 설명을 했다. “한 위원장은 여당으로서 역할에 집중할 때이고 무엇을 할 것인지 메시지를 국민께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는 것이었다.

윤재옥 원내대표가 지시한 사안에 대해 한 위원장이 급제동을 건 것이다. 이 같은 입장 차이는 국민의힘 내부에 존재하는 수도권 후보들과 영남권 후보들 간의 인식 차이를 드러낸 것이다. 강경한 이념 공세를 통해 보수층의 결집을 원하는 영남권 의원들의 입장을 윤 원내대표가 대변한 것이었는데, 그 같은 이념논쟁에 거부감을 갖는 중도층이 가장 많은 수도권 후보들로서는 판을 뒤흔드는 자살골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만약 윤 원내대표의 지시대로 문제의 현수막이 전국 선거구에 일제히 게첩됐다면 선거운동 개시 무렵에 뜨거운 논란거리로 부상했을 것이다. ‘철 지난 종북 타령’이라는 야권의 공세는 물론이고, 이념논쟁에 고개를 가로젓는 중도층의 표심에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 분명하다. 선거운동의 중대한 시점에 이런 지시를 내린다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얼마나 민심에 둔감한가를 나타내는 증거였다. 영남권 중심의 당이 갖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 해프닝은 국민의힘 안팎에 존재하는 노선의 차이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단지 이 현수막 소동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중도확장 노선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드러난다. 한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중도확장성을 가져야 한다고 대체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역시도 민주당이 더불어민주연합을 통해 비례대표 후보를 공천하는 과정에서 진보당 후보 3인을 당선가능권에 배치한 데 대해 종북세력의 국회 진입을 도와준다는 이념적 정체성에 대한 비판을 하곤 한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는 국민의힘에서 탈이념 실용주의적 노선에 힘을 싣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 국민의힘 진영의 시사 채널 유튜버들이 일제히 한 위원장에 대한 맹비난에 나서는 광경은 대단히 의아하다. 한 위원장을 민주당에서 하는 것보다도 더 맹렬하게 비난하고 있는 광경이 그러하다. 유튜버들이 스스로 진영 내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들이 밀었던 ‘우파’ 인물들이 공천에서 탈락한 데 따른 반감의 표출이라는 분석도 있다.

근본적으로는 이 역시 국민의힘 진영에서의 중도 확장 노선에 대한 입장의 차이를 반영한 것이다. 한 위원장에 대한 비난의 초점이 됐던 것이 ‘황상무 사퇴’와 ‘이종섭 귀국’이었다. 이에 대해 보수 진영의 유튜버들은 한동훈이 ‘좌파’들에게 휘둘려 엉뚱한 소동을 벌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장예찬, 도태우 후보에 대한 공천을 취소한 것에 대해서도 한 위원장을 향해 맹비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정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들이다. ‘한동훈 효과’를 누리며 한동안 진행되던 국민의힘의 상승세가 꺾였던 계기가 바로 용산발 ‘황상무-이종섭’ 논란이었다. 특히 총선의 판세와 승부를 좌우하는 중도층에 대단히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악재들이었다. 한 위원장이 용산과의 갈등을 무릅쓰고 ‘황상무 사퇴’와 ‘이종섭 귀국’을 요구했던 것은 수도권 선거를 위해서는 조속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장예찬, 도태우 후보의 과거 발언 논란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막말’들에 대해 엄정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선거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 이제까지 선거의 경험들이 말해주고 있다. 그런 조치들이 ‘좌파’에 휘둘린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그런 문제들을 비판했던 국민들은 ‘좌파’여서가 아니라 상식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지난 대선에서 강성 지지층에 둘러싸여 중도확장성을 잃고 패배했듯이 국민의힘도 내부의 강성 의원들과 지지층에 의해 중도확장 노선을 제대로 가지 못한 한계를 드러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25일 창원 반송시장을 방문해 백승아 더불어민주연합 공동대표, 이 지역 출마 후보들과 함께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25일 창원 반송시장을 방문해 백승아 더불어민주연합 공동대표, 이 지역 출마 후보들과 함께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도층 딜레마, 조국 입시비리 재판도 덮어야하나

대개 큰 선거를 앞두면 여야 정당들은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한 중도화 경쟁을 벌이는 것이 그간의 관행처럼 됐다. 이념논쟁이 막상 득표에 무용하거나 오히려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판단이 자리한 지도 제법 오래됐다. 그래서 총선이나 대선 같이 큰 선거에서 이념논쟁은 자제해 온 것이 여야 정당들의 역사였다.

대신 선거 의제의 중심에 자리한 것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 즉 민생문제였다. 여야 어느 한쪽을 고정적으로 지지하는 유권자들 이외에 중도 성향 유권자들이 특히 관심을 갖는 의제들이 이 영역에서 나온다. 보수정당에서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이 배출됐던 것도 무슨 보수 이념이나 안보에 대한 공약 때문이 아니라 경제성장 혹은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결과였다.

여야의 거대 양당 모두 자기 지지층의 표만 결집해선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30~40%의 표만 갖고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고, 부동층으로 존재하는 중도 성향의 표를 더 얻어야 이긴다는 사실은 경험을 통해 확립된 선거의 진리다. 그래서 선거 때만 되면 국민의힘은 왼쪽으로, 민주당은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중도화 경쟁을 보여주곤 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는 그런 중도화 경쟁이 보이지 않는다. 야권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선명성 경쟁을 벌이며 강성 노선으로 치닫고, 국민의힘은 여권 내부의 견제로 중도확장 노선에 발목이 잡혀 왔다.

국민의힘에는 이번 총선에서 중도층의 표심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한 위원장에게 확실한 칼자루를 쥐어주고 당이 과감히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이기는 길이었다. 그러나 영남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그런 변화에 대한 거부감은 두터웠고, 용산도 한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은 채 경계하는 분위기가 한동안 역력했다. 그러니 국민의 눈에 보이는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의 변화는 성에 차지 않았고,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통령실이 한 위원장의 역할을 높여주려고 물러선 것은 이미 위기가 현실화되고 나서였다.

게다가 이번 총선에서는 민주당의 공천이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소리를 들으며 이 대표의 사당화 정치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됐다. 그런 기회를 살려 중도층의 표심을 끌어들이지 못한 국민의힘이다.

위기의 상황 속에서 보수층의 결집을 의식한 여권의 행보가 눈에 들어온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지난달 22일 ‘제9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후 함께 천안함 현장을 살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이렇게 명백하게 도발과 공격을 받았는데도 자폭이라느니 왜곡, 조작, 선동해서 희생자를 모욕하는 일이 있다”면서 “반국가세력들이 발붙이지 못하게 해서 더 많은 위로를 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도 “영웅들을 이렇게 모욕하고 조작하고 선동하고 왜곡하는 세력들이 계속 그런 일을 하고 있다”면서 “반드시 막아내야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이러한 의기투합은 천안함 폭침을 부정한 진보당과 연대한 민주당을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6일에도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의 안전한 송환을 기원하는 ‘물망초 배지’를 달고 국무회의에 참석, “반국가세력들이 국가안보를 흔들고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종북세력 응징’의 메시지가 이번 선거에서 여권에 별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안보와 이념의 문제가 선거에서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의 ‘내로남불’을 비판한 중도층이 대거 정권교체를 선택한 덕분에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다. 그런데 2년여 만에 국민들의 감정이 바뀌었음이 나타나고 있다. 정권 심판을 위해서는 조 대표가 입시비리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일까지도 불문에 부치겠다는 중도층 일각의 표심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정권 심판을 위해서 입시비리 행위까지도 덮고 가는 상황은 그것대로 우리 사회에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게 된다. 4050 세대의 지지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20대가 외면하는 정당이라면 그 또한 미래를 기약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특히 중도층의 고심이 깊을 수밖에 없는 선거다. ‘중도층의 딜레마’다. 그들의 최종 선택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에 많이 모자란 모습을 보여 왔기에 이런 지경에 처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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