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27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27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회학 용어로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라고 하면 사회 이슈에 대해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계층을 일컫는다. 원래는 ‘목소리 큰 소수’(Loud Minority)가 득세할 때 이에 반대하는 다수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들은 사회가 양극단으로 첨예하게 갈라져 대립할 경우 여기에 피로감을 느끼는 계층이다. 분열과 대립의 정도에 따라 침묵하는 다수의 규모도 달라진다. 지금의 대한민국처럼 양 진영의 대립이 극한적일 경우, 중도층의 공간은 협소해져 침묵 세력은 다수가 아니라 소수가 된다.

지금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할 정당이 없다고 대답하는 응답자의 규모는 15~20%로 표시되고 있다. 선거에서 이들의 향배에 따라 정권의 향배가 결정된다. 다수가 아닌 듯이 보이지만 두 진영 사이에서 캐스팅보터(Casting Voter)로써 실질적 다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한국적 정치 지형에서 간절히 요구되는 역할이다.

나는 이 칼럼을 통해 4·10 총선거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제3지대 정당의 출현을 희망하는 뜻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몇몇 제3지대 정당들이 중도층을 대변하기보다는 양 진영에 흡수될 포말정당의 모습이어서 그런 기대를 접기로 했음도 밝혔다.

그 후 선거 움직임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 22대 총선이 역대 선거 중 가장 국론 분열적인 선거가 될지 모르는 상태에 빠졌다. 제3지대 정당 중에서 가장 늦게 태동됐음에도 예상치 못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조국혁신당 때문이다.

지역구 후보 없이 비례후보만 공천한 이 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10~20%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이 지지율이 유지된다면 비례의석만 15석 안팎을 얻어 제3당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문제는 이 정당이 추구하는 목표다.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부터 윤석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악연의 연속이었던 이 당의 조국 대표는 국회에 입성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이 윤 대통령에 대한 국정조사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 대한 특검이라고 밝히고 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현재의 예상대로 압도적인 의석차로 승리한다면 윤 대통령 탄핵에 나설 것이고, 그 선두에 조국혁신당이 설 것은 불문가지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 과반 획득에 실패한다 해도 국회 운영의 주도권은 캐스팅보트를 쥔 조국혁신당이 좌우하는 상황이 된다. 상식에 기반한 건전한 제3당에 의해 중도 통합형의 국회로 운영되기보다는 21대 국회보다 더한 대결 국회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조국혁신당 돌풍의 원인은 복잡다기하다. 가장 강력한 지지층은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싫다는 무당층 세력일 것이다. 거기에 공천과정에서 두 당에 실망해 등을 돌린 세력들이 가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당층 세력은 기권 성향이 높고, 국민의힘 이탈 세력은 정부 여당의 반성 정도에 따라 되돌아 올 가능성도 있다. 가장 확실한 조국혁신당 지지층은 민주당 내 ‘반명·친문 세력’인데, 민주당의 ‘몰빵 반격’ 속에서 이들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

그가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을 향해 내보이는 복수심을 정치활동의 동력으로 삼고 있는 것도 조국 정치의 불안 요소다. 사감에 의한 원한의 정치로 연상되는 것은 조선왕조 시대의 사색당파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올 뿐임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조 대표는 한 비대위원장에 대해서는 딸의 입학원서 대필 의혹을 특검 대상으로 삼겠다고 했다. 자신이 아내와 합세해 딸을 위해 허위 경력증명서를 발급한 행위를 일반화하려는 의도겠지만 혐의의 내용과 종류에서 비례에 맞지 않는 주장이다.

재판이 정치적 탄압 수단으로 이용된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했던 일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삼권분립이 작동되지 않았던 때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재판은 종종 독재의 도구였다. 그러나 조 대표의 혐의가 정치적 탄압의 범주에 들 수 없는 것은 그가 2심 재판에서 법정 구속을 면해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사실 하나로도 입증된다.

그의 범죄가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조국혁신당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해진다. 그 스스로 영어의 몸이 될 수도 있다. 당도 구심점을 잃고 해체될지도 모른다. 아마도 민주당에 합당함으로써 포말정당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조국혁신당에 대한 지지에는 우리 사회의 미덕일 수도 있고, 냄비근성이라고 할 수 있는 온정주의가 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법언(法諺)은 소중하다. 그러나 죄인이 용서를 받으려면 죄에 대한 반성이 전제돼야 한다.

조 대표가 그동안 자신의 혐의에 대해 보여준 자세는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자녀의 입시를 위한 허위 경력증명서 조작행위는 공정을 해치는 범죄다. 여론조사에서 조국혁신당에 대한 20대의 지지가 0%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한 것은 입시생들이 받은 상처의 깊이를 말해준다.

지지층의 다수를 차지하는 30~50대의 학부모 층 가운데 ‘개딸류’의 극렬 지지층이 아닌 신규 합세층은 조 대표가 당한 처벌에 대해 이해와 동정을 갖고 있을 수 있다. 자신들도 같은 위치에 있었다면 같은 처신을 했을 것이라는 동류의식 말이다.

조 대표에 대한 이런 온정주의 여론은 ‘내로남불은 가고, 멸문지화만 남은’ 것으로 우리나라 법치주의와 민주제도의 성숙을 저해하는 요소다. 인간적으로는 가혹하게 여겨질지라도 공직을 맡고자 하는 사람에게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귀감으로 남아야 한다. 조국혁신당에 대한 최종적인 지지는 이런 점들이 종합적으로 반영돼 나타날 것이다.

정치적 온정주의를 키우는 원인 가운데는 권력의 오만과 남용도 있다. 남에게만 엄격하고 스스로에 관대한 권력 행사는 필연적으로 민심 이반을 불러온다. 국민의힘은 조국 현상이 그것으로 연유된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정치는 국민의 눈에는 권력의 오만으로 비쳤을 수도 있다. 그 중 특히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스스로에 관대한 권력 행사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쏟아내는 막말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지지율이 국민의힘을 능가하는 것은 ‘이종섭·황상무 사태’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용 정치공작이라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으면, 선거 이후에 어떤 방법으로 처리할 것인지 대안을 제시했어야 한다. 야당이 200석으로 거부권을 무력화하고, 탄핵까지 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투표일은 열흘도 안 남았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