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문건 정체 묻자 "전혀 기억 없다"…CCTV 들이대도 "기억 안 나 죄송"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공판 출석을 위해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공판 출석을 위해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아이닷컴 강영임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법정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핵심 쟁점을 회피했다. 그러면서도 계엄 선포 후 법적 요건을 갖추기 위해 문건을 사후에 조작한 혐의에 대해서는 "박물관에 두듯이 생각했다", "프리(free)하게 생각했다"는 황당한 해명을 내놓아 방청석의 탄식을 자아냈다. 헌정 질서가 유린당한 엄중한 사태를 대하는 전직 국무총리의 인식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온다.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진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피고인 신문에서 한 전 총리는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했다. 특검팀이 계엄 선포 당시 대통령 집무실에서 들고나온 문건 2개의 정체를 묻자,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이 굉장히 부족해 부끄럽고 국민께 죄송하다"고 답했다. 재판장이 "대화 시간이 상당한데 기억나지 않느냐"고 재차 추궁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전혀 안 난다"는 것이었다.

앞선 재판에서 대통령실 대접견실 CCTV 영상이 공개되며 당시 상황이 객관적으로 확인됐음에도, 한 전 총리는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는 행적에 대해 철저히 입을 닫았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 사건의 속행 공판에 출석해 있다. 2025.10.24ⓒ연합뉴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 사건의 속행 공판에 출석해 있다. 2025.10.24ⓒ연합뉴스

이날 재판의 하이라이트는 '사후 계엄선포문' 작성 경위였다. 특검 수사 결과, 12월 3일 밤 국무위원들에게 배포된 최초의 계엄선포문에는 헌법상 필수 요건인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의 부서(서명)가 빠져 있었다. 이는 계엄 선포 자체가 절차적으로 무효임을 의미하는 중대한 결함이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이를 뒤늦게 인지하고, 사후에 작성된 선포문에 서명해 마치 적법한 절차를 거친 것처럼 꾸몄다고 보고 있다.

한 전 총리는 사후 서명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 이유에 대해 납득하기 힘든 해명을 내놨다. 그는 특검 조사에서 "저는 사실 해제됐기 때문에 한마디로 좀 프리하게 생각한 거다. 서류로서 갖추려 한 거라기보다는 박물관에 두듯이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헌법 절차를 위반한 내란 행위의 증거를 조작해 놓고, 이를 '역사적 사료 보존' 차원인 양 포장한 것이다. 이는 국정 최고 책임자 중 한 명으로서 법치주의를 얼마나 가볍게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전 총리의 태도는 시종일관 '책임 회피'에 맞춰져 있었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방어막 뒤에 숨어 불리한 신문을 피하고, 명백한 위법 행위는 '의도가 없었다'거나 '가볍게 생각했다'는 식으로 의미를 축소하려 했다. 하지만 "박물관에 두려 했다"는 그의 변명은, 오히려 그가 당시 상황을 얼마나 안일하게, 혹은 치밀하게 은폐하려 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헌정 유린의 공범으로 지목된 전직 총리의 비겁한 모습에 국민적 공분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