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일대 그린벨트 너머로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도권 일대 그린벨트 너머로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총선 정국과 맞물려 정부는 그린벨트 규제 완화를 선언했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지자체별로 그린벨트 해제가능 총량이 정해져 있으나 ‘지역전략사업’의 경우 그 이상을 풀 수 있도록 허용한다. 둘째, 개발이 불가능한 환경평가 1·2등급 구역도 대체 부지를 확보하면 해제를 허용한다. 군사시설 보호구역도 덩달아 해제된다. 서울 공항과 서산 공군기지를 포함한 공항 주변 및 작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접경 지역 등 339㎢가 대상이다. 명분은 비슷하다. 산업단지개발을 통해 지방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 및 성남 분당 등이 포함돼 반드시 그 말이 옳다고 볼 수 없다. 과거 롯데타워 개발에서도 공군기 항로와 겹친다는 논란이 일었고 활주로 각도를 3도 틀어 다시 짓는 것으로 타협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세금이 들어갔으나 민간 사업자가 이익을 독식했다.

서울시도 그린벨트 활용을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서울시에는 149㎢의 그린벨트가 존재한다. 이 중 30만㎡ 이상은 중앙정부가, 그 미만은 서울시가 해제 권한을 갖고 있다.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개발 열풍이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리고 있다.

그린벨트는 1938년 영국 런던에서 세계 최초로 설정됐고 1947년 ‘도시 및 농촌 계획법’이 제정되면서 전국으로 확대됐다. 국토의 12.6%를 지정해 국가가 개발권을 갖고 있다. 난개발을 막고 녹지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개발업자는 값싼 토지를 찾아 도시 외곽 이곳저곳에 주택과 상가를 짓는다. 그 결과 도시는 분절되고, 땅은 낭비되며, 시민들은 갑갑한 도시에 갇혀 자연을 접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성저십리(城底十里)로 한성부 사대문 주변 10리에 벌목과 매장을 금했고, 사산금표(四山禁標)로 도성 근처 북악산, 남산, 인왕산, 낙산 등의 출입을 금해 벌목과 경작을 막았다. 수재 방지와 환경 보전이 목적으로, 오늘날의 그린벨트와 유사하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1971년부터 1977년까지 점진적으로 국토의 5.4%를 그린벨트로 지정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인구가 몰리고 도시가 무절제하게 확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1968년 북한의 청와대 기습 사건을 겪고 수도 방위 강화의 시급성을 절감한 것도 원인의 하나였다. 각종 군사시설을 외곽에 재배치하면서 탁 트인 공간이 필요했다.

도시는 확장하는 속성이 있어 시간이 지나면서 해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실제로 그린벨트가 풀리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올림픽 전후로 미사리 조정경기장, 과천 경마장 등이 이때 개발됐다. 1기 신도시 개발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린벨트 개발이 본격화된 것은 김대중 정부 때다. 외환 위기를 맞아 외국인투자 유치 및 경기 활성화를 위해 수도권 입지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3층 이하 단독주택과 일부 근린생활시설 설치도 허용됐다. 2001년에는 마산을 제외한 모든 비광역시의 그린벨트가 해제됐다.

완화의 흐름은 후속 정부에서도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이명박 정부는 분양·임대 통합형 보금자리주택, 박근혜 정부는 민간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을 추진하면서 규제를 풀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서울에 주택이 부족하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다시 그린벨트 해제가 추진됐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고 폭등세가 진정되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다만 3기 신도시 일대는 해제됐다. 지금까지 남은 그린벨트는 국토의 3.7%에 불과하다.

그린벨트 해제 주장의 뒤에는 값싼 땅을 확보해 개발이익을 얻으려는 세력이 있다. 녹지에 아파트와 상가를 지으면 큰 돈을 벌 수 있다. 그곳과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는 물론 국가가 세금으로 지어야 할 것이다.

사유재산권 억제에 대한 정당한 불만에 가려져 있지만 상당수 녹지는 그린벨트 해제를 기다리는 외지인이 사들인지 오래다.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지역 투기는 전모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방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하지만 이미 지방에는 많은 산업단지가 구축돼 있고 상당수는 여전히 미분양 상태다. 경남은 산업단지가 205개로 전국 최다이지만 미분양률은 17개 시·도 중 4번째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제조업 비중을 줄이고 정보통신 등 첨단산업으로 전환하려고 하는데 지방 토지에 대한 수요가 그렇게 많을지도 의문이다.

현재 남아 있는 개발제한구역도 환경평가등급 1·2등급지가 최대 91%로, 보전 가치가 높거나 경사도가 심해 개발이 불가능한 지역이 대부분이다. 환경영향평가를 무시하고 지자체장들에게 해제 권한을 준다는 것은 도시인에게 가장 필요한 녹지를 빼앗을 권한을 준 것과 다름없다.

대체 부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지만, 1·2등급지를 개발하고 그보다 못한 곳을 그린벨트로 지정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한 곳을 풀어주면 다른 곳에서도 아우성을 칠 것이며 그것을 막을 명분도 없다. 환경평가기준 자체를 낮추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것은 그린벨트 제도 자체를 와해시키는 경로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제도를 원칙 없이 운용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영국은 개발권을 국가가 보유하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개발이 이뤄지며 사익 추구의 여지가 적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린벨트를 해제하면서 토지소유자와 민간사업자에게 개발이익을 넘겨준다.

독일은 자연침해 조정제도를 운영해 사업자에게 비용을 징수하고 정부가 훼손된 만큼 새로운 숲을 조성한다. 보전가치가 높은 곳을 개발하면 비용이 올라간다. 우리나라도 개발이익 환수제도가 있지만 환수비율이 낮고 그 돈은 다른 개발사업의 자금으로 들어간다.

사유재산권의 억제라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린벨트 제도를 유지하려면 목적에 맞게 운영돼야 한다. 1·2등급지를 포함해 꼭 보전이 필요한 지역은 개발을 강력하게 억제해야 한다. 2017년 개정된 ‘자연환경보전법’은 지자체에게 도시생태 현황지도를 제작하고 활용하도록 의무화했다. 법이 충실히 이행되면 필요한 녹지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준수하는 지자체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법은 형해화됐다.

개발이 필요한 곳은 해제하더라도 차익에 대해 상당한 세금을 부과하고 그 돈으로 환경 보전 때문에 개발이 억제된 곳의 토지 소유주에게 보상하면 형평성에 부합할 것이다. 관리도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지금처럼 그린벨트 지역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비닐하우스와 불법시설들이 들어서고 그를 빌미로 이제 의미가 없어졌으니 해제해야 한다는 식으로 일이 돌아가서는 곤란하다. 투기와 난개발을 막고 좋은 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원칙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 정책연구 담당(상무보) ▲KT그룹 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 정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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