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엔/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일본은행(BOJ)은 전날 17년 만에 금리를 인상했다. ⓒ연합뉴스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엔/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일본은행(BOJ)은 전날 17년 만에 금리를 인상했다. ⓒ연합뉴스

천수답(天水畓). 별도의 수리시설 없이 빗물에만 물 공급을 의지하는 논이란 뜻이다.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의외로 투자업계에선 이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외국인 일변도인 한국 증시를 설명하는데 이보다 적합한 말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코스피가 지난 14일 2718.76포인트로 연고점을 기록한 것도 올해 10조원가량 순유입된 외국인 자금에 기인한다.

외국인이 한국으로 가져온 유동성은 양날의 검이다. 자금이 대규모로 유입될 때는 주가가 급등하지만 반대로 자금이 빠져나갈 때는 변동성이 빠르게 확대된다. 지난 18일 기준 코스피 내 외국인 지분율이 32.5%에 달하고, 전체 주식의 과반을 외국인이 쥔 기업이 많다는 걸 감안하면 주가 흔들림은 외국인 이탈 여부에 따라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해외 투자자금의 유출입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실적이다. 필자가 겪어본 외국인 투자자들은 그동안 만나본 어떤 투자자들보다 숫자에 민감했다. 투자는 언제나 실적을 기반으로 결정했다. 다만 이런 선택은 외국인이 개별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특수한 상황에 국한된다.

둘째, 환율이다. 특히 원화 방향성이 중요하다. 한국 증시를 대하는 외국인의 접근법은 기업 중심에서 시장 위주로 달라졌다. 개별 기업이 아닌 전체 시장에 투자할 경우, 총 수익률과 연관된 환율 움직임이 투자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즉, 원화 약세에 따른 환손실로 한국 주식이 매력적이지 않다고 느낀다면 외국인 자금이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천수답 장세인 한국 증시에 매우 불리한 요인임이 틀림없다.

다행히 최근 코스피 상장사의 이익 전망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이후, 순이익 전망치가 소폭 내려가긴 했으나 여전히 지난해보다 50% 이상 높은 170조원으로 확인된다. 실적만 본다면 외국인 이탈 가능성은 낮다. 문제는 환율이다. 외국인 투자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환율이 움직이고 있다. 수출 증가로 외화가 유입되고 있지만 해외에서 달러 강세 압력이 발생해 원화가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있다.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가 이런 결과를 야기하고 있다.

먼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조 변화다. 올해 금리인하 전망이 달라진 계기는 지난달 소비자물가(CPI)와 생산자물가(PPI)에 있다. 연준은 물가상승 둔화를 금리인하 명분으로 삼고 있는데 두 수치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연준의 정책 기조도 점차 매파적으로 바뀌고 있다. 연내 인하 횟수가 3회에서 2회로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금리인하 속도가 느려지는 건 시장금리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는데, 외환 측면에서 달러화 강세를 자극한다. 그 결과 달러인덱스가 103포인트를 넘길 수 있고, 원/달러 환율도 1340원선을 상향 돌파할 수 있다.

다음은 일본은행의 정책 전환이다. 지난 19일 일본은행은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17년만의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2016년 2월부터 -0.1%를 유지했던 단기금리는 0~0.1%로 10~20bp(bp=0.01%포인트) 인상됐다. 장기금리를 낮추는 수익률곡선제어(YCC) 정책과 자산시장을 부양하는 ETF/REITS 매입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를 상회하는 가운데 춘투를 통해 알려진 임금상승률이 5%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다만 금융시장 반응은 정책 결정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매파적인 정책으로 엔화는 강해져야 했지만 실제 결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일본은행이 정책 정상화와 상충되는 국채 매입을 지속할 것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엔/달러 환율은 150엔선을 넘어섰다. 향후 문제는 엔화 약세가 달러 강세를 자극해 원/달러 환율 상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통화정책이 한국 증시에 불리한 요인이 된 것이다.

마지막은 중국 인민은행의 통화정책이다. 중국은 기준금리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대출우대금리(LPR)를 기준금리 대용으로 사용한다. 문제는 인민은행이 금리인하 의지가 약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5년 만기 LPR은 내렸지만 1년 만기 LPR은 낮추지 않았다. 중국은 경기부진 여파로 3월 양회에서 언급한 5% 성장 목표를 맞추려면 금리 인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이 위안화 강세를 강조한 영향에 통화당국의 금리 인하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당분간 위안화가 변동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위안화와 동행성을 보이는 원화도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종합하면 당분간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는 연준의 정책 전망과 엔화 약세 여파로 강세 압력에 노출될 전망이다. 반면 원화는 위안화와 마찬가지로 가치 변화가 크게 없을 듯 하다. 이를 결합하면 원/달러 환율은 위를 향해 움직일 수 있다. 문제는 원/달러 환율 상승이 국내 증시에 진입한 외국인에게 환손실 우려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 증시에 대한 보수적 시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동안 한국 증시는 밸류업 기대와 외국인 순매수에 힘입어 2700포인트를 상향 돌파하는 강세를 나타냈다. 하지만 밸류업 재료가 소진된 상황에서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 환경이 발생한다면 증시는 단기 약세 압력에 노출될 수 있다. 환율 상승 국면에서 한국 증시에 투자하는 건 국내외 모든 투자자에게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만약 투자를 끊을 수 없다면 환율 변화와 외국인 매매동향을 더욱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투자에 녹록지 않은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